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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1일 화요일

[펌] 이민10년차 - 자녀교육에 대한 소고


자료출처 : 꿈과 삶의 여유속에서 - http://blog.daum.net/onionlake/16891145

[펌] 역이민 - 돌아갈까 머물까

얼마전 한국인의 이민에 관한 통계발표를 보니, 한해 11,000 명 정도의 한국인이 한국을 떠나고, 4,200명 정도의 교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단다. 어림잡아 이민을 떠났던 열명중 네명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셈이다. 역이민이다.

80 만불
50대 중반의 여자분. 몇주전 이 여자분이 갑자기 실신을 했다. 다행히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가 정신을 되찾고 제발로 걸어서 퇴원을 했다.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그런데 며칠 후 가족들이 이분에게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여자분이 퇴원 이후 이틀간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집에서나 가게에서나 평소와 똑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했었던 '이틀'이 이분에게 전혀 기억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검사결과는 모든 것이 정상이랜다.

하지만 본인은 원인을 잘 알고 있단다. 이민생활 이십여년만에 수중에 쥔 돈이 80만불. 일반적으로 봐서 무척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나이도 있고해서 이젠 좀 편안히 살 요량으로 찜질방을 인수했었단다. 앞으론 그저 먹고만 살면 된다는 생각에 평생 모은 돈 80만불을 거기에 쏟아부은거다. 근데 그 돈을 다 날리게 생겼단다. 사기를 당했단다. 사기를 친 당사자는 딸의 친구. 그래서 뼈와 살이 타들어 가고 있었단다. 그런 상태가 계속되면 죽을수도 있어서 그래서 졸도를 하고 순간 기억상실을 했던 걸거란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그들의 심경을 헤아려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고 숨이 막힌다. 낼 모레면 육십인데 갑자기 전재산을 날렸다.. 가진 돈이 아예 없었더라면 일찌감치 꿈을 포기하고 LA에서 흔히 보는 무개념의 노인들, 정부돈 축내면서 약으로 연명하는 그런 추한 노년을 대비하고 있었을텐데, 이들에겐 80 만불이라는 돈이 있었다. 그래서 윤택하지는 않겠지만 나름대로 아름답고 품위있는 노년을 보낼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노년에의 꿈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자기가 그토록 경멸하던 그런 추한 노인의 삶만이 기다리고 있다. 그분의 눈빛엔 촛점 없는 무망함만이 있다. 희망을 모두 잃었기 때문이다.


200 만불
San Diego에서 호텔체인을 운영하던 노부부가 동반 자살했다. 부인을 먼저 총으로 쏴 죽이고 남편이 따라서 자살했단다. 비록 저가 호텔체인이긴 하지만 그래도 호텔을 소유하고 운영하던 사람이라면 어느정도 부를 축적한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호텔 운영이 어렵다고 자살을 했단다.

그는 이 호텔을 2년전 동업자 두명과 함께 현금 600만불을 넣고 2천4백만불에 인수했었다고 한다. 셋이서 동업을 했었다니 일인당 투자금액이 2백만불 정도였겠다. 2백만불 현금 동원능력이 있었다면 일반적으로 미국이민에서 '굉장히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그는 이전까지 작은 모텔을 운영하던 사람이라고 한다. 부부가 직접 빨래도 하고 청소도 하면서,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좀 편안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고, 내심 번듯한 ‘호텔’ 사장의 꿈을 펼치고 싶기도 했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뜻을 같이하는 동업자들을 만나 대망의 호텔사업을 시작했었을 것이다. 평생 모은 전재산이었는지 여웃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2백만불로 그 꿈을 이루었을 것이다. 시시껄렁한 ‘모텔주인’에서 꿈에도 그리던 ‘호텔 사장님’으로 올라섰었다.

하지만 2년전이라면 미국 부동산 경기가 천정을 치던 무렵이다. 물론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만큼 폭락한 게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찌 되었든 그 시절은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광풍으로 미쳐있던 시기였었기 때문에 그도 이 호텔을 터무니 없이 비싸게 주고 인수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다 주택시장 붕괴와 극심한 경기침체를 맞은 거다. 호텔의 운영이 순식간에 어려워졌을 것은 당연한 일. 호텔의 시세도 당연히 폭락했을 것이다. 그래서 호텔의 현시세가 은행 융자금에도 못 미치는 깡통 호텔이 되었던 것일 수도 있다.

이분이 한국을 떠났던 건 70년대 초 한국정부에서 외화벌이를 위해 인력을 수출하던 때였다고 한다. 이 분은 그 당시 서독으로 광부일을 하러 떠났었단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와 나이 예순 중반에 2백만불 정도의 현금을 쥐었다. 모텔주인에서 벗어나 폼나는 호텔 사장님이 되었다. 내가 드디어 성공했음을 만천하에 자랑스럽게 알렸다. 근데 그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 일로 이분들이 계속 살아갈 희망을 잃은 모양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인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마 이분에게도 그 2백만불이 전재산이었던 듯 하다.


척박한 이민생활
어려울 때 도와줄 가족도, 손을 잡아줄 이웃도 없는 곳이 이민 생활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실상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남이다. 그래서 비록 내색하지는 않지만 매일매일이 외롭고 고독하고 불안하다. 주변에 사람이 북적대는 줄 알았지만 어려움에 직면했을때 심각하게 상의할 사람이나 도움을 청해볼 사람은 없다. 이런 불안정한 상황의 이민자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대처하는 능력이 매우 약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절망의 순간, 희망의 끈을 쉽게 놓아버리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민자중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것이 실상이다. 고국의 가족이나 친지들에겐 적당히 부풀려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게 실상이다. 근데 이런 이민자들과는 달리 소위 성공하는 이민자였던 호텔체인의 경영주가 덜컥 자살을 했다. 

하루벌어 하루 먹고사는 평범한 이민자들에게 이 자살소식이 어떻게 느껴질까? 얼마 전 최진실이 자살했을 때, ‘최진실 같은 사람도 자살하는데 나 같은 게 뭐한다고 바둥거리며 살아?’하는 자괴감에 많은 국민들이 힘들어 했었다고 들었는데, 이번 자살사건으로 많은 이민자들이 그와 비슷한 심경에 빠졌을 수도 있겠다. 아무리 그의 자살에 특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을지라도 평범한 이미자들에겐 좌절을 준다.


고민
한국을 떠난 사람들.. 떠나기 전 수많은 고민을 했었다. '머물까 떠날까..' 머물자니 답답하고, 떠나자니 불안하고. 그래서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들의 이민 결정이 보다 인간다운 환경을 찾았던 것이든, 그저 막연히 외국생활을 동경했던 것이든, 아니면 먹고 살기위한 것이었든, 아무튼 사람들은 용감하게 한국을 떠났었다.

상당수 사람들은 환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 많고 공기 맑은 발코니에서 우아하게 모닝커피를 마시고, 사업체는 ‘종업원 운영’하면서 나는 골프나 치는 생활, 이런 꿈같은 생활을 꿈꾸며 한국을 떠났었다. 그래 나도 나가서 이렇게 폼나게 살아봐야지.. 그러나 그 꿈이 깨지고 현실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곤 한국에선 생각지도 않던 그런 일을 하면서 겨우겨우 살아간다.

그렇게 길을 잃는다. 나아갈 길도, 돌아갈 길도 안 보인다.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외로운 이민 생활.. 그래서 요즘같이 더욱 척박한 때엔 많은 사람들이 예전에 한국을 떠날 때 했었던 그 고민을 똑같이 다시 하겠다.

머물까 돌아갈까..

그렇지만 실상은 한국을 떠나던 그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돌아가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요란떨면서 가더니 겨우 요걸 버티고 되돌아 왔다고 날 한심하다 여기진 않을까.. 그나저나 가면 도대체 뭐해먹고 사나.. 애들은 과연 한국에 적응할 수 있을까.. 그냥 여기서 죽을때까지 살아야 하나.. 이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역이민을 포기하고 있겠다.

역이민을 가는 40%의 사람들.. 버티다 버티다 벼랑끝에 몰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물론 있겠지만, 참 팔자 좋은 분들이라 느껴지기도 한다. 최소한 한국으로 돌아는 가니까.. 

자료 출처 : http://kr.blog.yahoo.com/doorieclinic/3901

[펌]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역이민 줄잇는다

 지금부터 10여년 전 한국에서는 이민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IMF 구제금융을 받던 시기 직후인 1990년대 말에 시작하여 2000년대 초중반까지 그 바람은 계속 되었다. 나 또한 그 바람에 실려 한일 월드컵이 열리기 직전 이곳에 와서, 월드컵의 열기와 더불어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보수 언론은 "나라 경영을 잘못하여 인재들이 해외로 유출된다"며 이민 바람을 당시 정부를 비판하는 소재로 적절하게 써먹기도 했다. 그런데 이곳에 와서 보니, 나를 포함하여 한국이 아까워 할 만한 인재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그때 많은 이들이 이민 보따리를 쌌는데, 가장 선호되던 나라가 바로 캐나다였다. 캐나다 중에서도 최대 도시 토론토로 한국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몰렸다.
 
토론토 풍경. 숲과 맑은 공기가 좋다. 처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좋지만 점점 지나면 익숙해져서 좋은 줄도 모른다. 김상현 사진.

   2000년대 중반 들어 한국 이민자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가뭄에 콩나듯 하던 한국 이민자가 올해 들어서는 뚝 끊어졌다. 무슨 통계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고 내 주변을 둘러보며 하는 이야기다. 통계도 거의 비슷할 것이다.

  한국 이민자가 뚝 끊어진 반면 기존 한국 이민자 중에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이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올해 들어서는 줄을 잇고 있다. 이쯤 되면 '한국으로의 역이민 바람이 분다'고 할 만하다. 내 주변에만 해도 올해 세 가정이 돌아갈 참이다. 
 
  역이민을 하는 이유는 가정마다 다르니, 수십 수백가지가 넘을 것이다. 내 눈에 잡힌 이유들을 살펴보면, 가장이 할 일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먼저 꼽힌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하고, 멀쩡한 직장에 십수년 다니다가, 이민을 와서 취직을 하려 하니 그게 뜻대로 안된다. 엔지니어나 IT 기술자들도 1990년대 후반에 와서 취직한 '행운의 세대'를 빼고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한다.

  이민자들의 전통적인 밥벌이였던 스몰 비지니스도, 이제는 대자본에 거의 완전히 넘어갔다. 죽으라 하고 일을 해도 대자본에 먹히기 일쑤이고, 자칫 잘못하면 자본의 노예가 되기 십상이다(이 대목에 대해서는 다음에 자세히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할 일을 찾다가,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부모가 귀국하는 경우가 가장 일반적이다. 아무래도 한국은 이곳보다 일자리가 많고, 또한 과거의 기득권을 되살린다면 기회 또한 맨땅에 해딩하는 이곳보다야 많다. 과거 지방에서 서울로 자녀들을 유학 보내는 것과 똑같이 보면 된다.

  이민을 왔는데, 이곳에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 부모 한 쪽이 한국에 남았다가 한국에서 가족이 합치는 경우. 역시 자녀들이 대학에 입학 하는 것을 보고 귀국 보따리를 싼다. 

  이른바 기러기 생활을 오래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보았다. 역시 가족은 죽으나 사나 함께 살아야 가족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한국이 엄청 잘 살게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국에 사는 이들이야 '죽겠다, 죽겠다' 하지만, 외국에 나와 살다보면 한국은 별로 죽을 일이 없는 참 잘 사는 나라이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곳에서 한국을 방문하는 일은 한국 이민자들 사이에 부러움의 대상이다.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행된 지 20여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을 갖게 된다. 과거에는 한국에서 외국 한번 나가보는 게 소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또, 한국에서 이곳에 사올 물건은 엄청 많아도 이곳에서 한국에 보낼 선물을 고르자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한국에는 없는 게 없고, 또 물건 자체가 워낙 좋으니, 이곳에서 사서 보낼 만한 것이 거의 없다. 한국 물건, 특히 옷이나 신발 같은 것은 금방 눈에 띈다. 디자인과 품질이 고급스러우니까.

  캐나다가 한국에  자랑할 만한 것은 의료와 교육, 노년 혜택 정도인데, 한국에 가서 수술 받고 오는 이들도 많았다. '빨리 빨리' 수술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이야 이곳은 아직 입시지옥이 아니니 그런 대로 괜찮은 편이고, 노년층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최상급이라고 들었다. 아직 노년이 아니니, 그걸 느낄 시점은 아니다.

  한인 이민 사회가 너무 좁아서, 조금 넓은 곳에서 살고 싶은 욕구도 작용할 것이다.  한국에는 일상적인 영어 스트레스가 없고, 가족과 친구가 있다. 일단 돌아가면 금방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게 될 터이지만, 바다 건너 땅은 늘 좋아보인다. 한국에서 캐나다를 바라보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민의 고전적인 정의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나라에서 부자나라로 가서 사는 것'을 말한다. 최소한 한국은 이민의 고전적인 정의가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가끔 이민 오고 싶다는 사람들을 보는데 보는데, 많이 답답하다. 오라고도, 말라고도 할 수 없으니….
 
자료출처 : http://bomnamoo0420.tistory.com/entry/캐나다에서-한국으로-역이민-줄잇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