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7월 26일 금요일

앗~ 임신이다...

느낌이 왔다....

약국에 가서, 테스터기를 사왔다.
다음날 아침일찍 Test를 했다...

임신....

실감나진 않지만... 나의 2세가 지금 집사람의 몸속에서 꿈틀데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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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터기에 2개의 선명한 선이 보인다.]

20002년 7월 26일...

2002년 7월 22일 월요일

[펌] 10달러 짜리 화폐의 가치..

늦은 시간에 한 남자가 피곤하고 짜증난 상태로
일터로부터 집에 돌아왔다.
그의 다섯살 난 아들이 문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 저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 궁금한 게 뭔데? 남자가 대답했다.

아빠는 한 시간에 돈을 얼마나 버시나요?
그건 네가 상관할 문제가 아냐. 왜 그런 걸 물어보는 거냐?
남자가 화가 나서 말했다.

그냥, 알고 싶어서요. 말해주세요, 한 시간에 얼마를 버시나요?
작은 소년이 다시 한 번 물었다.

네가 정 알아야겠다면... 한 시간에 20달러다.

아, 소년은 고개를 숙였다.
다시 아버지를 올려다보며 그는 말했다.

아빠, 저에게 10달러만 빌려 주실 수 있나요?

아버지는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
네가 돈을 빌려 달라는 이유가 고작 멍청한 장난감이나 다른
쓸모없는 것을 사려는 거라면, 당장 네 방에 가서 잠이나 자라.
네가 도대체 왜 그렇게 이기적인 건지 반성하면서!
나는 매일매일 하루종일 힘들게 일하고 있고, 그렇게 유치한 일에
낭비할 시간 따윈 없다.

그 작은 소년은 말없이 방으로 가서 문을 닫았다.
남자는 아들의 질문에 대해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 것을 느끼며 앉아 있었다.
어떻게 돈을 빌리기 위해 감히 그런 질문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한 시간쯤 지나고 마음이 좀 가라앉자, 남자는 자신이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마도 10달러로 꼭 사야만 할 뭔가가 있었던 것이겠지.
게다가 평소에 자주 돈을 달라고 하던 녀석도 아니었는데.

남자는 아들의 방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자니? 그가 물었다.

아니요 아빠, 깨 있어요. 소년이 대답했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좀전엔 내가 좀 심했던 것 같구나.
남자가 말했다.

오늘 좀 힘든 일들이 많아서 네게 화풀이를 했던 것 같다.
자, 여기 네가 달라고 했던 10달러.

소년은 벌떡 일어나서 미소짓고는
고마워요, 아빠! 하고 소리쳤다.

그리고, 베개 아래 손을 넣더니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꺼내는 것이었다.
남자는 소년이 벌써 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을 보고
다시 화가 나기 시작했다.
소년은 천천히 돈을 세어 보더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돈이 있었으면서 왜 더 달라고 한 거냐?
아버지가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냐면..모자랐거든요. 그치만 이젠 됐어요.
소년이 대답했다.



아빠, 저 이젠 20달러가 있어요.
아빠의 시간을 한 시간만 살 수 있을까요?
내일은 조금만 일찍 집에 돌아와주세요.
아빠랑 저녁을 같이 먹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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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

화폐의 가치를 나타내는 속담같다.

생각해 보면 우리 선조들은 정말로 슬기로웠다.

가치 있는 돈쓰기 정말 힘든 것같다.

누가 저 10달러를 10달러의 가치로 보겠는가?

2002년 7월 10일 수요일

나의 첫번째 디지틀 카메라 Samsung SD-30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첫번째 디카입니다.
필름이 아니라 디지틀로 저장이 된다라는 획기적인 사실과.. 가벼운 가격으로 인하여~
디카와의 만남으로 인하여, 저의 인생은 보다 생생하게 기록되기 시작되었습니다.

2002년 6월 5일 수요일

한강유람선타고~ 202m 월드컵분수보고..

장인어른,장모님,처남과 함께, 한강으로 유람선을 타러갔습니다.

8시30분배를 타기위해서, 일찌감치, 여의도로 모인다음에 63빌딩 지하1층 천수라는 일식집에서, 저녁을 천천히 먹고..
한강 유람선 선착장으로 향했습니다.

강바람이 시원하더군요~


[한강 유람선을 타러 가기 위해서, 선착장에 연결된 다리위에서..]

배가 다가 옵니다. 배 바깥부분을 추구공 조명으로 멋지게 만들어 놨더군요...
끝내줍니다.


[예전에 SBS 방송의 결혼할까요의 촬영현장입니다.]

강바람도 시원하고, 한강 야경도 끝내주고...
코스는 한강을 출발해서, 양화대교를 거쳐서,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앞의 202월드컵 분수를 보고 돌아오는 1시간 코스입니다.

야경도 야경이지만, 압권은 역시, 202M의 월드컵 분수이더군요..
그앞의 다리에서 쏘아대는 조명도 끝내주구요...


[분수앞의 다리에서 쏘아대는 멋진 조명.. 뒤로 분수가 보이는군요..]


[정말 멋있는 202M 월드컵 분수... 주위의 조명을 받아서, 색깔이 멋집니다.]

1시간동안의 유람선 여행을 마치고, 선착장에 내려서자 덥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워낙 시원한 강바람을 받으며, 유람해서인지.. ^^

그렇게 유람선관광을 끝내고, 집으로 복귀 했습니다.

2002년 6월 4일 화요일

[한국:폴란드] 여의도 공원에서 응원!! - 6월 4일

6월 4일은 한국과 폴란드의 월드컵 본선경기가 있는날이었습니다.

경기가 8시 30분이었기에, 아내와 7시에 여의나루역에서, 만나기로 하고, 여의나루역에서, 조인을 했지요~
밖을 나와보니...

뜨어억... 여의도 공원이 LG돔을 중심으로, 사람으로 가득차 있더군요..
그래도, 좋은 자리를 찾이해볼려고, 여기저기 서성거렸지만... 이미 좋은 자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더군요...
그래서, 어쩔수 없이 맨 뒷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8시가 가까워지자, 사람은 더 많아지고... 여의도는 발디딜틈도 없게 되고.. 그나마 7시에 우린 여의도에 도착해서 그나마, 괜찮은 자리를 잡았던거 같습니다.

8시 30분!!! 한국전이 시작되고....
아주 난리 났습니다.
대한민국을 외치고~
뒤쪽에 앉은사람들은, 대한민국이란 응원구호보다, 앉아주세요!라는 말을 하느라고, 목이 다 쉬었습니다...
워낙멀어서, 스크린도 잘 안보이고...
그래도, 사람들과 함께 호홉하면서, 봐서인지, 재미있더군요..

황선웅의 첫골, 유상철의 두번째꼴~
여의도가 발칵 뒤집힐뻔했습니다.

드디어 이겼습니다. 2:0... 정말 감격적이더군요..
(회사 직원들과 한 점수 내기에서, 이겨서 더 기뻤는지도 모릅니다. --;)

경기가 끝나고, 승리축하 폭죽이 발사되고....
우리나라의 승리못지않게 기뻤던것은, 여의도 공원에 모인 모든 시민들이 경기가 끝나고, 집에 돌아가기 위해 일어나며서, 자신의 자리는 스스로가 깨끗이 치우고 돌아가는 정말 정말 성숙된 시민의식을 보여주었나는것... 정말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이 많은 관계로, 여의나루역을 포기하고, 여의도역까지 걸어갈생각으로 길을 나섰는데, 워낙 많은 인파라서, 그인파가 대로로 나오자 마자, 교통이 마비되더군요.. 차로 절반이 인도로 변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차도의 절반을 점거한채로, 걸으면서, 대한민국 구호를 외치고, 차들은 빠빠빠빠빵으로 클랙숀을 누르고...

비록 피곤하긴 했지만, 정말 재미있는 하루였습니다.


[LG돔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뒤에서 보면, 선수들 얼굴도 잘 안보여요...]


[LG돔 반대편에 설치된 현대 자동차 스크린..]

2002년 6월 1일 토요일

현충원 갔다왔습니다.

작년에 6월 6일을 기념해서, 대전현충원에 갔다가, 수많은 인파로 인하여, 고생을 해서, 올해는 6월 6일을 피해서, 미리 대전에 내려갔다오기로 했습니다.

6월 1일 토요일이 가장 괜찮더군요..

영애누나, 태양이, 지현누나, 준서, 나, 그리고, 아내...

이렇게 6명이 EF를 타고, 아침일찍 인천을 출발해서, 3시간도 못되서 대전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날씨 정말 좋더군요...

매형묘비를 정성껏 닦고, 이쁘게 다시 꽃꽃이를 하고, 기도를 드리고...


[꽃꽃이에 온신경을 쏟고 있는 3명의 아낙들...]


[묘비사이를 누비는 준서]

매형참배를 끝내고, 인천으로 올라오면서, 장비야외전시관을 들러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사진도 몇장 찍었습니다.


[해군비행기 앞에서 준서 한장!!!]

인천에 올라오는 길도 하나도 안막히는 바람에~
집까지 순풍 왔습니다.

작년에 비해서, 너무 편하게 갔다왔군요...

2002년 5월 28일 화요일

월드컵... 그리고, 터기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 스포츠조선게시판에서 가져온글인데 너무 좋은 글이라 올립니다.

창피한 자화상(터키를 아십니까?)

미국은 한국을 공산당의 마수에서 구해준 은혜의 나라입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자국이기주의로 반미감정이 일어났지만
아직도 많은 한국인에게는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정서이며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방위전략측면에서 우리를 도운 것일 뿐
순수하게 자유와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도운 것이 아닌데
우리는 지금까지 그러한 착각 속에서 미국을 대해왔습니다.

터키라는 나라는 자국의 이익과는 아무 관계가 없고
이득도 없는 한국에 오직 인류애로서 미국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고
터키가 보낸 군대는 모두 차출이 아닌 자원병이었다고 합니다.
이를 계기로 터키는 지금까지 한국을 형제의 나라로 생각하며
한국이 잘살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 사실조차도 잊고 있었습니다.
아니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 맞겠지요. 한국에게 터키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은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일에는 무관심하고
오히려 관심을 갖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이기적(?)습관에 젖어있기에 그런 게 아닐런지???

우리가 월남에 파병을 한 것이 터키와 같이 조건 없는 파병이었습니까?
우리의 국익을 위한 파병이었습니다. 외국에서 지진참사가 나서 구호성금을 모을 때도
피해자 가운데 한국인이 있으면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지진이 났나보다 하고 지나쳐 버리죠.
불매운동이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의식에서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조국을 위한 군복무도 기피하는 풍조에서 터키는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터키는 한국 전쟁 당시 우리를 위해 싸워준 민족입니다.
저들이 피 흘렸고 죽었으며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우리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50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 민족을 사랑했었습니다.
사실 우리 민족은 저들의 짝사랑을 외면했고 그 실제를 몰랐습니다.
88 올림픽 때에는 “형제의 나라에서 올림픽을 한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하면서 24시간 내내 TV 방송을 하기도 했고,
국제 대회 때마다 한국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남서울 은혜교회 사이트에서)


터어키 국민은 한국 동란 시 참전으로 맺은 인연으로 인하여,
한국인을 코렐리(Koreli)라고 부르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며,
문제 발생시 적극 도와주려 함. (에주투어 터키 현지정보에서)


터키는 6.25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16개국의 일원으로 전쟁에 참가하여
그 용맹성을 떨치며 한국을 피로써 도와주었다.
이러한 역사적인 관계로 인해 터키는 한국에 대해 깊은 사랑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국과 터키는 이러한 우호 협력의 관계를 보다 심화시키고자
양국간 상호 상대방 명칭을 딴 공원을 조성하기로 하여
앙카라의 구 터미널(기차역 근처)앞에 한국공원이 한국 정부에 의해 1973년
한국 참전 전사자를 기념하여 조성되었다.
한국에도 여의도 인도네시아 대사관 옆에 앙카라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앙카라 여행 사이트에서)


이 모든 일 보다도 나를 많이 깨우친 일은 "한국전참전용사"와의 만남이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기까지 그분들께서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을 흘리셨을 지.
배로 28일이 걸리는 먼 이국까지 와, 목숨을 걸고 싸우신 그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총 19 분을 뵈었는데 그 중 7분은 돌아가셨다(이 분 가정에선 부인과 아들을 만났다).
대부분 그리 넉넉한 생활을 하고 계시진 않았다.
아직도 맘 한구석이 서늘한 것은 그 때문일까.
짤막한 만남이었지만 우리를 바라 불 때의 시선 하나 하나와 그 눈빛에서
어떤 공감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50년이나 흘러 이제야 찾아온 송구함을 어떻게 설명을 드려야 할까.
우리가 잊혀진, 잊고 싶어서 잊어버린 기억을 기어이 다시 꺼내고 오기만 한 건 아닌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지만 정확한 발음으로
인천, 부산, 대구, 대전, 수원, 군우리를 기억하고 계셨다.

6만6천이라는 터키군 그들이 강한 신념으로
한국인과 영광을 위해 가장 용맹하게 싸웠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방문만으로도 고마워하시고 반가워하셨던 그분들..
그 분 마음속에 한국은 항상 형제의 나라(Brother Country)였다.
(최민지씨의 터키 자원 봉사기중 발췌)


그리고 한국과 터키사이의 관계를 말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6.25와 터키 대지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6.25때 미군다음으로 터키 군인들이 많이 참전을 하였습니다.
터키도 의무 복무기간이 18개월 정도 되기 때문에
한국전에 참전하여 부상을 입은 참전용사 할아버지들은
국가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1996년 혹은 1997년경에
터키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한국이 보여준 성의에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을 하곤 합니다. (김관훈씨의 터키 여행기중)


신계륜 의원은 5월 8일 오후 Tomur-Bayer 주한 터키대사와 만찬을 하며
양국 관심사에 대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Tomur-Bayer대사는
99년 터키 대지진때 국민 성금을 모아준 것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신계륜 의원도 6.25 전쟁 시 파병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을 전했다.
Tomur-Bayer 대사는 한국에 오기전 중국에서 5년 동안 지낸 경험을 설명하고,
신계륜 의원이 "중국인과 한국인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하고 묻자
Tomur-Bayer 대사는
"중국인들은 사람을 계산적으로 대해 친구를 사귀지 못했지만,
한국인들은 친구처럼 따뜻하게 대해주어 너무나도 좋다"고 이야기했다.
(국회의원 신계륜 사이트에서)


한국과의 평가전을 앞두고
터키 국가대표 코칭스태프가 언론과 팬들의 무관심에 섭섭한 마음을 표현하기까지 했다.
터키 주재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평가전 당일 대부분 사람들이 TV로 경기를 관전하기 위해 일찍 귀가한 탓에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의 주요 시내가 마치 한산했다고 한다.
이튿날 주요 일간지들은 평가전 결과를 1면에 보도할 만큼 비중을 뒀고
터키 국민 대부분이 한국팀의 높은 기량에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한국대사관은 터키에서 월드컵의 열기를 지피고 한국을 홍보하기 위해
지난 25일 이스탄불에서 `월드컵기념 한국 전통공연`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희철 서기관은
"당일 객석을 가득 메운 터키 사람들이 사물놀이와 전통 춤 등에 매료됐을 뿐 아니라
한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도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해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본 터키는
한국과 피로 맺어진 우방이어서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국민 대부분이 한국에 호감을 갖고 있는 상태.
때문에 대사관측은 월드컵 본선에서 터키를 응원하기 위해
인터넷(cafe.daum.net)에 `터키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


27일 한국과 평가전을 가진 터키는 우리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나라다.
6ㆍ25 전쟁 당시 한국을 돕겠다고 1만4936명의 병력을 파견한 우리의 혈맹이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가 월드컵 개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이들 혈맹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터키가 당시 참전을 결정하고 병력을 모집한 과정의 얘기는 참으로 감동적이다.
당초 터키는 한국전쟁에 5000명 정도의 병력을 보낼 작정이었다.
그러나 모병결과 1만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자원을 했다고 한다.
상당수 자원자들이 동양의 자그마한 나라가 전쟁으로 공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