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3일 토요일

지란지교를 꿈꾸며..

지란지교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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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 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살았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

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열어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이야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사람이 자기 아내나 남편, 제 형제나 제 자식하고만 사랑을 나눈다면 어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영원이 없을수록 영원을 꿈꾸도록, 서로 돕는 영원한

친구가 필요 하리라.




그가 여성이라도 좋고 남성이라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

거나 적어도 좋다. 다만 그의 인물이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 깊고

신선하며 예술과 인생을 소중히 여길 만큼 성숙한 사람이면 된다.



그는 반드시 잘 생길 필요가 없고, 수수하나 멋을 알고 중후한 몸가짐을 할

수 있으면 된다.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

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을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나 내가 평온해 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많은 사람을 사랑하고 싶진 않다. 많은 사람과 사귀기도 원치 않는다.

나의 일생에 한 두 사람과 끊어지지 않는 아름답고 향기로운 인연으로 죽기

까지 계속 되길 바란다. 나는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끼니와 잠을 아껴 되도록

많은 것을 구경하였다. 그럼에도 지금은 그 많은 구경 중에 기막힌 감회로

남은 것은 없다. 만약 내가 한두 곳, 한두 가지만 제대로 감상했더라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을 것을.



우정이라 하면 사람들은 관포지교를 말한다. 그러나 나는 친구를 괴롭히고

싶지 않듯이 또한 끝없는 인내로 베풀기만 할 재간이 없다. 나는 도 닦으며

살기를 바라지 않고, 내 친구도 성현 같아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나는 될수록 정직하게 살고 싶고, 내 친구도 재미나 위안을 위해서 그저 제

자리서 탄로 나는 약간의 거짓말을 하는 재치와 위트를 가졌으면 싶을 뿐이다.



나는 때때로 맛있는 것을 내가 더 먹고 싶을 테고, 내가 더 예뻐 보이기를

바라겠지만, 금방 그 마음을 지울 줄도 알 것이다. 때로 나는 얼음 풀리는

냇물이나 가을 갈대 숲 기러기 울음을 친구보다 더 좋아할 수 있겠으나

결국은 우정을 제일로 여길 것이다.




우리는 흰 눈속 참대같은 기상을 지녔으나 들꽃처럼 나약할 수도 있고, 아첨

같은 양보는 싫어하지만 이따금 밑지며 사는 아량도 갖기를 바란다.



우리는 명성과 권세, 재력을 중시하지도 부러워하지도 경멸하지도 않을 것이며

그 보다는 자기답게 사는 데 더 매력을 느끼려 애쓸 것이다.



우리가 항상 지혜롭진 못하더라도, 자기의 곤란을 벗어나기 위해 진실일지라도

타인을 팔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받더라도 묵묵할 수 있는 어리석음과 배짱을

지니기를 바란다.



우리의 외모가 아름답진 않다 해도, 우리의 향기만은 아름답게 지니리라.



우리는 시기하는 마음 없이 남의 성공을 얘기하며, 경쟁하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되, 미친 듯이 몰두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우정과 애정을 소중히 여기되 목숨을 거는 만용은 피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애정과도 같으며, 우리의 애정 또한 우정과도 같아서

요란한 빛깔과 시끄러운 소리도 피할 것이다.



나는 반닫이를 닦다가 그를 생각할 것이며, 화초에 물을 주다가, 안개 낀

아침 창문을 열다가, 가을 하늘의 흰 구름을 바라보다 까닭없이 현기증을

느끼다가 문득 그가 보고 싶어지며, 그도 그럴 때 나를 찾을 것이다.



그는 때로 울고 싶어지기도 하겠고, 내게도 울 수 있는 눈물과 추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다시 젊어질 수 있는 추억이 있으나, 늙는 일에 초조하지

않을 웃음도 만들어 낼 것이다.



우리는 눈물을 사랑하되 헤프진 않게, 가지는 멋보다 풍기는 멋을 사랑하며

냉면을 먹을 때는 농부처럼 먹을 줄 알며, 스테이크를 자를 때는 여왕처럼

품위있게, 군밤을 아이처럼 까먹고, 차를 마실 때는 백작부인보다 우아해

지리라.



우리는 푼돈을 벌기 위해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며, 천년을 늙어도

항상 가락을 지니는 오동나무처럼,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자유로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살고자 애쓰며 서로 격려하리라.



우리는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며, 특별히 한 두 사람을 사랑한다 하여 많은

사람을 싫어하진 않으리라. 우리가 멋진 글을 못 쓰더라도 쓰는 일을 택한

것에 후회하지 않듯이, 남의 약점도 안쓰럽게 여기리라.



내가 길을 가다가 한 묶음 꽃을 사서 그에게 안겨줘도, 그는 날 주착이라고

나무라지 않으며, 건널목이 아닌 다른 데로 찻길을 건너도 나의 교양을

비웃지 않을 게다. 나 또한 더러 그의 눈에 눈곱이 끼더라도,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 해도 그의 숙녀됨이나 그의 신사다움을 의심치 않으며

오히려 유유함을 느끼게 될 게다.



우리의 손이 비록 작고 여리나 서로 버티어주는 기둥이 될 것이며, 우리의

눈에 핏발이 서더라도 총기가 사라진 것은 아니며, 눈빛이 흐리고 시력이

어두워 질수록 서로를 살펴주는 불빛이 되어주리라.



그러다가 어느날이 홀연히 오더라도 축복처럼, 웨딩드레스처럼 수의를 입게

되리라.



세월이 흐르거든 묻힌 자리에서 더 고운 품종의 지란이 돋아 피어, 맑고 높은

향기로 다시 만나 지리라.

- 유 안 진

2001년 6월 21일 목요일

그사람이 좋은이유

마음을 데우는 오뎅 국물
최현실
올 겨울 들어서면서 우리 동네 골목길에 못 보던 붕어빵 리어카가 생겼습니다. 여러 번 그 앞을 무심코 지나쳤었다가 마침내 어느 날, 오랜만에 붕어빵이나 한번 먹어볼까 하고 비닐 포장 안으로 들어갔지요. 구워놓은 것은 없고 이제 막 새로 굽기 시작하여 조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가 꽤 추워서였는지 기다리는 동안 당연히 추운 날씨가 화제가 되었지요. 붕어빵과 함께 오뎅을 팔던 아주머니는 오뎅 국물이 뜨끈하다 못해 시원하다시며, 웃으며 사양하는 제게 날이 춥다며 기어이 한 컵을 들려주시는 겁니다. 사실 저 같은 서울 깍쟁이들은 대개 이런 인심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하지가 않지만 그 넉넉한 인심을 자꾸 사양하는 것이 싫어서 결국은 생각도 없는 오뎅 국물 한 컵을 받아들었습니다.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는 중, 그 아주머니가 여름엔 야채장사를 하시다가 추운 겨울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붕어빵과 오뎅 장사를 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죠. 예순은 족히 넘은 그 아주머니는 오뎅 국물이 정말 맛있다는 저의 말에 신이 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지는요, 재료는 절대 안 아껴요. 그래야 맛이 나지. 추운 겨울엔 이렇게 시원∼한 국물이 최고인데… 드시는 분들이 맛있게 드셔야 지도 신이 나지요. 그리고 지는요, 여름에 이 자리서 야채장사 할 때두요, 파 같은 거 어지간하면 깨깟이 다듬어 드려요. 앉아 놀면 뭣해요. 그런 거나 해드리지….”


그렇게 진심에서 우러난 ‘고객 제일주의’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사시는 아줌마의 인심이 너무나 훈훈하더군요. 생각보다 붕어빵 굽는 시간이 더 걸리자 아주머니께선 추운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오뎅도 하나 건져 먹으라고 하십니다. 아주머니의 인심이 하도 고마워 오뎅도 하나 팔아드리고 싶어 저는, 생각도 없는 오뎅 하나를 건져 먹었지요.


이윽고 붕어빵이 다 구워지자 오뎅값은 내지 말라는 아줌마와, 겨우 천 원어치 붕어빵만 사면서 250원짜리 오뎅을 덤으로 받는 게 어딨느냐는 저 사이에 약간의 즐거운 실랑이가 오갔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께 반강제로 1200원만 드린 저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아주머니의 그러한 인심은 ‘약간의 재료비 투자로 얻어지는 지역 내 마케팅 구전 효과’라는 식의 반드르르 윤이 나는 상술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온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거친 피부 위에, 그래도 배어 있는 평안함과 구수함으로 그저 느껴졌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추운 거리에서 붕어빵과 오뎅을 팔고 계시지만, 분명히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분에게서 오뎅 국물을 얻어먹은 것은 축복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앞을 오가며 슬쩍슬쩍 포장 안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곳은 주변의 생선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와 야채를 파는 할머니 그리고 하루 이틀 가끔씩 지나는 노점 상인들이 잠깐 들어가 추위를 녹이고 나오는 거리의 사랑방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치는데 장사하시는 분인 듯한 한 아저씨가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한 컵 쥐어들고 걸쭉한 목소리로 “아, 이거… 고맙습니다” 하시며 나오시는 광경은 낯설지 않더군요.


어둠 내린 쌀쌀한 골목길 한구석에 희망꽃 한 다발처럼 그 아주머니는 늘 그렇게 그 포장마차 안에서 따뜻한 오뎅 국물을 마련해놓고 백열등을 밝히고 계시답니다. 아마도 아스팔트 위에서도 난로가 필요치 않은 계절까지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추위를 그곳에서 녹이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제 마음도 데워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냥 지나치실 것입니다.

2001년 6월 5일 화요일

[2001-06-05] 짧은 글.






짧은 글

권우주


그동안 고생시켜

미안하다는

그것이 힘들었다면

용서해달라는

그리고

이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는

어머니 일기장에

아버지의

짧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