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21일 목요일

그사람이 좋은이유

마음을 데우는 오뎅 국물
최현실
올 겨울 들어서면서 우리 동네 골목길에 못 보던 붕어빵 리어카가 생겼습니다. 여러 번 그 앞을 무심코 지나쳤었다가 마침내 어느 날, 오랜만에 붕어빵이나 한번 먹어볼까 하고 비닐 포장 안으로 들어갔지요. 구워놓은 것은 없고 이제 막 새로 굽기 시작하여 조금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그날따라 날씨가 꽤 추워서였는지 기다리는 동안 당연히 추운 날씨가 화제가 되었지요. 붕어빵과 함께 오뎅을 팔던 아주머니는 오뎅 국물이 뜨끈하다 못해 시원하다시며, 웃으며 사양하는 제게 날이 춥다며 기어이 한 컵을 들려주시는 겁니다. 사실 저 같은 서울 깍쟁이들은 대개 이런 인심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하지가 않지만 그 넉넉한 인심을 자꾸 사양하는 것이 싫어서 결국은 생각도 없는 오뎅 국물 한 컵을 받아들었습니다.


붕어빵이 구워지는 동안 이 얘기 저 얘기 주고받는 중, 그 아주머니가 여름엔 야채장사를 하시다가 추운 겨울엔 이 자리에서 이렇게 붕어빵과 오뎅 장사를 하신다는 걸 알게 되었죠. 예순은 족히 넘은 그 아주머니는 오뎅 국물이 정말 맛있다는 저의 말에 신이 나서 계속 말씀하십니다.


“지는요, 재료는 절대 안 아껴요. 그래야 맛이 나지. 추운 겨울엔 이렇게 시원∼한 국물이 최고인데… 드시는 분들이 맛있게 드셔야 지도 신이 나지요. 그리고 지는요, 여름에 이 자리서 야채장사 할 때두요, 파 같은 거 어지간하면 깨깟이 다듬어 드려요. 앉아 놀면 뭣해요. 그런 거나 해드리지….”


그렇게 진심에서 우러난 ‘고객 제일주의’ 정신을 가지고 열심히 사시는 아줌마의 인심이 너무나 훈훈하더군요. 생각보다 붕어빵 굽는 시간이 더 걸리자 아주머니께선 추운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이번에는 오뎅도 하나 건져 먹으라고 하십니다. 아주머니의 인심이 하도 고마워 오뎅도 하나 팔아드리고 싶어 저는, 생각도 없는 오뎅 하나를 건져 먹었지요.


이윽고 붕어빵이 다 구워지자 오뎅값은 내지 말라는 아줌마와, 겨우 천 원어치 붕어빵만 사면서 250원짜리 오뎅을 덤으로 받는 게 어딨느냐는 저 사이에 약간의 즐거운 실랑이가 오갔습니다. 결국 그 아주머니께 반강제로 1200원만 드린 저는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요. 아주머니의 그러한 인심은 ‘약간의 재료비 투자로 얻어지는 지역 내 마케팅 구전 효과’라는 식의 반드르르 윤이 나는 상술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나온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거친 피부 위에, 그래도 배어 있는 평안함과 구수함으로 그저 느껴졌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추운 거리에서 붕어빵과 오뎅을 팔고 계시지만, 분명히 누구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신 분에게서 오뎅 국물을 얻어먹은 것은 축복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그 앞을 오가며 슬쩍슬쩍 포장 안을 눈여겨보게 되었는데, 그곳은 주변의 생선을 파는 노점상 아주머니와 야채를 파는 할머니 그리고 하루 이틀 가끔씩 지나는 노점 상인들이 잠깐 들어가 추위를 녹이고 나오는 거리의 사랑방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그곳을 지나치는데 장사하시는 분인 듯한 한 아저씨가 종이컵에 오뎅 국물을 한 컵 쥐어들고 걸쭉한 목소리로 “아, 이거… 고맙습니다” 하시며 나오시는 광경은 낯설지 않더군요.


어둠 내린 쌀쌀한 골목길 한구석에 희망꽃 한 다발처럼 그 아주머니는 늘 그렇게 그 포장마차 안에서 따뜻한 오뎅 국물을 마련해놓고 백열등을 밝히고 계시답니다. 아마도 아스팔트 위에서도 난로가 필요치 않은 계절까지 많은 사람들이 몸과 마음의 추위를 그곳에서 녹이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아주머니는 어쩌다 한 번씩 들르는 제 마음도 데워주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냥 지나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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