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8일 토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책을 읽는 아이(들)

저는 아이를 키울때 단 하나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물론 이 소망은 아직도 유효하구요.
아이가 책읽는 것을 좋아하고 책을 많이 읽었으면 하는게 그것이었습니다.
아이가 책 읽는 환경을 조성하는게 저의 모든 자녀교육의 핵심입니다.
다행히 아들이 나의 소망을 채워주는것 같아서 참 기쁨니다.
남들보다 조금 이른 시기에 글씨를 읽은 덕분에 좀 더 빠른 시기에 책을 혼자 읽기 시작했고, 요즘은 다양한 책을 접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여러가지 모습중에서 가장 예쁜모습이 바로, 아침에 눈을 뜨면 눈을 비비면서 책을 읽을때입니다.
(물론 매일 그러지는 않습니다)


호주는 날씨가 한국과 반대이기때문에 아침이 조금 쌀쌀합니다. 이른 아침에 이불을 하나 걸치고 책을 읽고 있네요.



책읽는걸 즐겨하는 아들에 비해서, 둘째는.. 그냥 음악 나오면 몸 흔드는걸 즐기는 편입니다.
글자 좀 가르치려고 하면 이건 뭐.. 한 두어글자 하고나면 몸이 아주 배배 꼬아집니다.

아마도, 첫째만 키웠다면, 모든 아이들이 첫째와 같았을거라고 생각했을겁니다.
같은배에서 나와서 같은 교육환경하에서 자랐는데도 저렇게도 성형이 틀리군요.

그러도 오빠가 책을 읽고 있으면 한두번씩은 옆에서 자세는 잡곤 합니다.

현재 책읽기 800권을 지나서 900권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데, 책이 두꺼워지고, 하는 바람에 숫자가 예전 동화책 읽는거 만큼 쑥쑥 안올라가네요.

아들이 900권 읽고 나면 루나파크에 가자고 하고 있는데, 언제 갈지는 미지수입니다.

2009년 7월 6일 월요일

시드니에서 즐기수 있는 축제 리스트~

축제의 도시 시드니는 1년내내 축제로 가득차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축제가 있다면 축제기간을 맞추어 보는것도 좋은 생각일듯 합니다.

2009년 7월 5일 일요일

시드니 올림픽 파크 '뉴잉턴 빌리지'와 '올림픽 경기장' 풍경

이번주 수요일에 시드니로 이사를 갑니다. 새로운 보금자리는 Homebush Bay..
뉴타운이라서, 인터넷에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지 않습니다. Homebush Bay 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열리면서 새롭게 꾸며진 곳인데, 그지역인 뉴잉턴 지역과 올림픽 경기장과 연계하여 좋은 정보가 올라와 있어서, 올려봅니다.
(인터넷에서 퍼온 자료이기 때문에 '저희집'이라고 표현된곳이 저희집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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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9월  '시드니 올림픽' 이 개최된 파크안에는 선수촌이었던 Newington(뉴잉턴)
빌리지, 크고 작은 4개의 공원, 뉴잉턴 자연생태 지역, 자연 늪지, 3km의 파라마타 강
변 산책길, 4km의 숲길을 비롯한 12km의 아름다운 워킹 코스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3층의 '유닛'입니다. 올림픽 경기시 선수들의 숙소로 사용되었고 일반
에게 분양을 했습니다. ( 2층 중앙이 저의 집입니다.)





집앞 잔디밭이 선수촌 입촌식을 한 잔디 광장입니다. 중앙 2층에 보이는 저의 집 베란다
에는 2그루의 '우산나무'와 꽃이 피는  나무 1그루가 자라고 있습니다.





올림픽 빌리지에는 400여세대의 유닛과 800여세대의 단독주택이 있고 초등학교 , 울월스를
비롯한 여러개의 상점과 음식점이 들어있는 '뉴잉턴 마켓'이 집에서 50m의 거리에 있습니다.






마을 앞 자연늪지의 연못






마을 앞의 산책로 숲길 ( 거리 2km ). 가을의 끝자락인데 어디에도 단풍이 든
나무는 보이지를 않지요. 일년내내 같은 풍경입니다.






마을 앞을 지나는 'creek(샛강)'으로 '홈 부쉬 베이'로 흘러 갑니다.







뉴잉턴 마을 '유닛' 전경. 3층 아파트는 'UNIT'이라고 표기를 하더라구요.






올림픽경기장 앞에 있는 늪지 연못 . 각종 수중식물과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올림픽마을에서 경기장까지는 걸어서 10분이면 갑니다. 물론 늪지 연못길을
지납니다.






올림픽 주경기장. 지금은 호주의 전화회사인 '텔스트라'가 경기장을 매입하여
'텔스트라 스타디움'으로 이름이 변경되었지요. 요즈음은 호주 훗벌, 럭비경기
가 주로 열립니다. 축구 경기는 일년내내 한번도 없습니다.






역대 올림픽도시 기념탑으로 물론 1988년 서울올림픽 기념탑도 있습니다.
야경으로 보는 올림픽기념탑의 조명은 환상적이지요. 드넓은 올림픽광장
에 휴지 한장 볼 수가 없을 만큼 늘 깨끗하답니다.







올림픽 파크내의 경기장과 시설에 대한  안내탑입니다.





각종 실내경기가 열렸던 '슈퍼돔'으로 우리나라의 세계적인 가수 '비'의 시드니
공연이 열렸던 공연장이기도 합니다. 관람료가 너무 비싸 관중이 적었다는군요.





올림픽이 끝난 후, 주 경기장의 축소로 따로 떼어서 경기장 앞의 잔디밭으로 옮겨
진 성화대. 7만의 관중석을 5만으로 축소함.





주경기장 앞의 조형물로 여러 곳에 조각품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올림픽파크 스테이션 ( 올림픽 전철역 )






올림픽파크 스테이션 ( 올림픽 전철역 )





경기장 내의
호텔인 'NOVOTEL'로 시드니를 여행하던 친구 서너명이 이 호텔에
머물러서 서너차례 포도주와 과일을 사들고 간 곳이기도 합니다.



 
경기장내의 플러터너스 산책길로 아열대의 사철푸른 나무가 가득 찬 올림픽파크
에서 그나마 가을의 정취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경기장내의 플러터너스 산책길로 아열대의 사철푸른 나무가 가득 찬 올림픽파크
에서 그나마 가을의 정취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경기장내의 플러터너스 산책길로 아열대의 사철푸른 나무가 가득 찬 올림픽파크
에서 그나마 가을의 정취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경기장내의 플러터너스 산책길로 아열대의 사철푸른올림픽파크
에서 그나마 가을의 정취를 볼 수 있는 곳입니다.


2000년 11월. 시드니에 정착한 곳이 올림픽선수촌이었던 'Newington' 마을입니다.
집앞 잔디밭이 선수촌 입촌식을 거행한 곳이기도 합니다. 살기좋은 곳이라는 생각
을 늘 합니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아파트라 거실에 앉아서도
일출을 늘 볼수가 있습니다. 아침노을도 볼만하고 가끔은 쌍무지개가 뜨기도 하죠.

계절로는 겨울이지만 잔디는 여름보다 더 파랗고 가장 추운 한 겨울의 기온도 5도
- 17도정도 이니 한국의 4월 중순의 기온과 비슷할 겁니다. 아파트와 주택을 짓더
라도 난방시설은 전무합니다. 역시 겨울은 겨울, 춥게 느껴져서 두터운 옷을 입고
지낸답니다.

일년에 두차례 세일기간이 있습니다. 6월과 12월인데 거의 모든 백화점이나 상점이
50% 정도의 정품 세일을 합니다.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이 대부분이지만 유럽각국에
서 수입된 명품도 세일을 해서 이 기간에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서 사용합니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관광비자로 호주 공립학교 가는 법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우리 나라 부모님들의 교육열,
자식이 잘 되는 일이라면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맞추어 주고 충족해 주고 싶은 것이 우리 한국 부모님들이 정서 입니다.  나날이 치열해지는 입시교육과 또 줄업 후에도 갈 곳이 없어 헤매게 만드는 낮은 취업률의 현실 속에서 점점 더 이른 나이에 조기유학을 결정하시는 부모님들이 점점 늘고 있는 추세 입니다.

호주에서 제일 많은 교민이 살고 있는 시드니, 어린 나이의 자녀를 보내고자 할 때 아무래도 친지나 지인이 있는 곳으로 보내고 싶으신 것이 부모님들 마음이신데 그러다 보니 곧 있을 방학을 맞아 관광비자로 입국해서 공립학교 진학 하는 것에 대산 질문들을 많이 하십니다.

일단은 유학을 결정하기 앞서 방학기간을 이용해 짧은 기간을 경험해 보고 유학의 여부를 결정하시고자 하는 분들이 대부분이시므로 단기 관광비자로 공립학교에 가는 방법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관광비자로 공부하실 수 있는 최대 주수는 12주 이며 학비는 아래와 같읍니다.

Year K--6    $2,640 ($220/week)
Year 7--10   $3,120 ($260/week)
Year 11--12  $3,690 ($307.50/week)
    학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입학신청비 110불(학교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이 소요되며 학비에는 견학 비용이나 유니폼 의약품 비용등은 포함되지 않습니다.
관광 비자를 연장하신다고 하셔도, 공립학교에 다시 12주 과정을 다니시는 것은 안되며 이것은 학교를 변경하셔도 안됩니다.  간혹 학교를 바꾸면 새로운 학교라 여겨 다시 12주 기간을 다니실 수 있다고 아시는 분들께서 계신데 그렇지 않읍니다.

필요한 서류는 여권과 비자사본 그리고 예방 접종증명서와 최근 2년 동안의 성적증명서 그리고 재학증면서가 영문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가디언의 신분증 사본이 필요합니다.

주소지 관할 구역 관내에 있는 공립학교에 입학 신청서와 위의 서류들을 제출하고 교장선생님 인터뷰를 받은후 교장선생님이 허가를 한다고 인증해주면 이 서류를 다시 울릉공 문교성에 보내게 되고 그때 학비를 지불하게 됩니다.

교장선생님이 허가를 하셨다고 해도 울릉공 문교성에서 해당학교에 대한 입학허가서인 "Authority to Enroll'이라는 서류가 발급되기 전까지는 학교에 나갈수 없읍니다.

따라서 다니시려고 하는 학기의 한텀전 방학전까지 어드민을 마치고 텀이 시작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게 오거나이즈 하는 것이 좋겠읍니다.

조기유학의 경우 관광비자에서 학생비자로 전항이 가능하게 법이 바뀌었으므로 경험 후 현지에서 학생 비자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때 초등학교의 경우 학생비자로 갈수 있는 지정된 초등학교가 아닌 경우에도 재학하던 공립학교의 교장선생님께서 학생비자로 계속 학업을 이어나가는 것을 허락하시면 리스트에 있지 않은 학교라도 해당공립학교에 학생비자로 다니실 수 있읍니다.

조기유학은 유학분야 중에서도 가장 기초설계와 상담이 중요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섹션입니다.  학생당사자들이 미성년이다 보니 본인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보모나 가디언 또는 유학원 같은 제 3자의 도움과 결정이 학생의 진로를 판가름 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확한 정모와 꼼꼼한 설계가 필요하며 믿을수 있는 조언또한 필요합니다.

[펌] 삼양식품 전중융 사장의 기업정신

60년대 중반,,
세상에 한국보다 더 배고픈 나라는 없었다.
오죽하면 그 당시에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았었으니까..



한국의 기아 문제는 해결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이제는 개인의 자급이나 구호는 물론,

국가 정책으로도 서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보다못한 삼양식품 전중융 사장은 결국 기업 차원에서 한국민의 배고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묘조라면' 사장을 회장이 직접 찾아가 궁핍한 한국의 식생활을 호소하며 기술 이전을

부탁했다. 물론 거절 당했고,, 회장의 수개월에 걸친 호소에 결국 감동한 `묘조라면'

사장은 노하우 전부를 이전해주었다.

삼양식품은 묘조라면의 기술을 이전받아 삼양라면이라는 라면회사를 설립한 후 당시 한국인들에게

가장 부족했던 단백질 보충을 위해 소고기를 원료로 한 스프로 국물을 만들고, 꼬들꼬들한 면을

만들기 위해,일본에서 쓰던 식물성 저가 팜유가 아닌, 값비싼 소 우지로 면을 튀겼다.



당시 식물성 팜유를 쓰던 일본조차 원가 상승때문에 시도하지 못했던 이 우지는..
미국 패스트푸드점이나 식당에서 사용하던 고급 기름이다.

물론 가정용이나 고급 식당에서 팔리던 1등급 우지보다는 낮은 등급이었지만,

그건 소고기의 등급에 따른 문제였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게 그 유명한 삼양라면.. 대한민국 최초의 라면이었다.
이 라면은, 허기진 서민들과,, 배고픈 어린이들, 그리고 끼니 챙기기 힘든 노동자들의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었고,심지어 해외에 수출되어 외국의 배고픔 문제와 국가경제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박정희대통령조차 삼양식품의 인간존중 경영책을 보고 배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박정희가 유일하게 믿고 세무조사를 하지 않았던 기업은.. 유한양행과 삼양라면 뿐이었다.

지금도 그런 인간중심의 인사정책은 아직까지 적용되고 있다. 국민 영양을 위해 고가 원료인

소고기 재료만 고수하고, 서민들 주머니 사정때문에 너무나 저가에 팔았기때문에
삼양라면은 5년간 적자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절대 가격을 올리지 않았고 당시 라면 한 그릇은 10원이였던 점.....

삼양의 재정이 5년 후 흑자로 돌아서고 시장이 커지자 조선일보, 동방유량, 롯데(농심), 럭키(엘지)가 라면사업에 뛰어들었지만 가격과 품질 면에서 게임이 되지 않았다.
삼양과 동등한 원료로 같은 가격의 라면을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그러면서도 흑자를

보는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삼양은 이윤이 아닌 서민의 배고픔 해결을 1 순위로 삼았기 때문이다.

삼양식품의 저가가격에 다들 가격도 못 올려보고 적자로 허덕이다 망한 이유가 그것이며,

식물성 저가 팜유를 써서 근근히 연명하던 타 라면사들의 면발은 맛도 없고 꼬들꼬들한 느낌도 없었다.
삼양라면은 그렇게 이 나라의 대표 인스턴트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 80년대 말,,
라면에도 다양성과 고급화를 바라는 소리가 나오고, 빙그레, 야쿠르트, 오뚜기까지

라면 사업에 뒤늦게 합류했고 심지어 전두환 마누라인 이순자까지도 `청보식품'이라는
라면 회사를 만들었다.


 

시장이 다양해지고 배고픔마저 잊은 국민들에게 이제 서서히 순하고 담백한 맛의

삼양라면의 맛에 싫증내기 시작했고 뇌기능 저하의 치명적 화학 조미료인 MSG를 퍼붓어
매운맛, 짠맛, 단맛만 자극적으로 강조한 라면에 혀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라면 시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결국 삼양라면은 시장 점유율 40퍼센트까지 내려앉았다.


하지만 시련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삼양라면이 20년간 써온 2등급 소고기 우지가
노태우 정권 시절 `공업용 우지'로 보건사회부에 의해 검찰에 고발된 것이었다.
문제의 공업용 우지는 미국 고급 식당이나 가정, 패스트푸드점에서 사용하는 2등급 고가 우지였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모든 언론사들은 이것을 마치 폐기물로 쓰는 쓰레기 오일로 보도하였고,

결국 라면시장 대부분을 차지하던 삼양 라면은 이 사건 직후 5퍼센트까지 매출이 감소했고,
80년대 당시 4000여억원의 손실을 입게 되었다.
게다가 직원 80퍼센트가 실직.... 160만 박스의 라면을 폐기처분하였다.

 

 

 


결국 라면 시장은 롯데 농심에게 전부 내주고, 마가린과 쇼트닝 회사마저 롯데에게 내주게 된다.


그로부터 5년 후....
식용 우지가 고급 기름이고, 미국 가정에서도 쓰이기때문에 무해하다는 법원 판결이 났지만,
삼양라면은 이미 피범벅으로 식물인간이 된 상황이었고,그 기사조차 조중동을 비롯한

부패 언론에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우지파동'때는 앞 다투어 1면에 선정성 기사를 내걸고, 무혐의가 드러나자 꼭 보도할 의무는 없다며

외면한 것이다. 지금도 사람들의 머릿속에 삼양라면 하면 떠오른는게 공업용 우지다.


언론이 그래서 무서운 것이다.


삼양라면에서 너트가 나왔다. 조선일보는 몇날 몇일 대대적으로 보도를 하고 있지만
정작 비슷한 시기에 농심라면에서 나온 바퀴벌레는 기사로도 내지 않고 있다.
삼양라면에 너트가 우연히 들어갔을거라 믿는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삼양라면에서
너트가 아니라 공업용 자동차 엔진이 나와도 삼양라면을 먹을 것이다.
나는 자장면과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MSG 화학 조미료를 퍼넣기 때문이다.
N 사에서 나온 라면도 먹지 않는다. 타사 라면보다 MSG가 두 배 가량 높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삼양라면만 전 라면에 걸쳐 MSG를 넣지 않는다. MSG를 넣으면, 이런 자극적 입맛으로

버려진 라면시장에서,삼양라면도 금방 N 사를 따라잡고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것이다.
하지만 삼양라면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67년 당시 창업주 전중융 사장이 남대문 시장을 걷다가 꿀꿀이 죽이라도 얻어 먹으려고 기다리던

가난한 어린이들을 보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아 한참동안 눈물을 흘린 후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그 잘나가던 제일생명을 팔고 그 돈으로 일본에 구걸하여 기술을 이전받아 만든 대한민국의

유일한 양심적 먹거리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나라에서 번 돈을 죄다 일본으로 가져가는 그리고 정경유착의 한가운데 서있는..

그딴 양심불량 기업이 아닌..

 

 

타 카페에서 어느분이 댓글로 다신 글을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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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양식품 (성북구 하월곡동 )건물은 하월곡동에서도 주택밀집지역에 있는 5층건물 건물평수(바닥면적 약 300평정도)에 비해선 앞의 공터가 (약 400평)굉장히 넓습니다.
주택가인 하월곡동에선 두산 삼성래미안 , 학교 다음가는 대표건물이라 할 수 있죠.
그 건물앞 빈공간은 겨울빼놓곤 아이들의 놀이터, 노인네들의 쉼터, 배드민턴장 그리고 구석벤치는 연인들의 은밀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농심이라면 꿈도 못꿀 일이죠.
가끔 몰래주차하기도 하고.내�냐구요?
삼양식품은 밤 8시 쯤돼면 5층 일부만 빼놓곤 건물 불 다끄고, 경비아저씨도 특별한 일 아니면 밖에 나와 보질 않아요. 그러니 월곡동 주민들의 쉼터로 사랑받고 있지요. 새벽4시까지 그 앞에서 술먹는 집단도 봤음,애초부터 지역주민도 고려한 건축설계라고도 보여짐. 꽁꽁 막혀있는 공간이 아니라 거주주민들과의 경계가 불분명한 공간. 들어가도 아무말 안하는 공간.
그 주위엔 작은 식당들이 삼양직원을 주 점심손님층으로 하여 영업하니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고 있고.
아참. 여기 본사에 가시면 라면등 제품 박스로 싸게 사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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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어느 대학도시의 기숙사에 우리나라 학생들이 한 십여 명 있었습니다.
낯설은 이국 생활이라 당연히 고국의 음식이 그리웠지요
.
당시만 해도 한국 음식점이 주변에 없었고
어쩌다 명절 때나 부모님들께서

비싼 돈 들여 보내주시는 밑반찬이라야 받아보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라면이라도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 모두의 소원이었지요
.


프랑스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식품점에서 라면을 팔기는 했는데
홍콩인지

싱가포르에서 만들어서 "출전일정" 일본상표를 붙인 조잡한 제품이었고, 첨부된 중국식 돼지고기

맛 수프가루를 타서 요리를 하면 정말 웬만큼 비위가 좋지 못한 사람들은 그 느끼함에 다

해버릴 정도. 그래서 저희들은 수프가루 넣는 대신 소금, 양파, 고춧가루로 맛을 내고는 했지요.
우리나라 우리 맛 라면을 너무나 먹고 싶은 마음에 하루는 꾀를 내었습니다
.
기숙사 외국 학생들이 모두 삼백 여명쯤 되었는데
학교 식당에서 모두에게 대한민국 라면파티를

멋지게 열어주자고, 그래서 우리나라 우리맛 라면의 진수를 전 세계에 보여주자고.


그런 내용을 써서,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삼양라면 사장님께
다만 본사가 당시

서울 종로 청진동에 있었다는 것만 알고서 도와주십사 라는 편지를 진담반 장난반 올렸습니다.
물론 무모하고 황당한 요청임을 잘 알기에
저희는 삼양라면에 대해 답신 조차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며칠 후...
파리 오를리 공항 세관에서 제게 소환장이 날아왔습니다
.
외국산 식료품이 무려 2 큐빅톤이나 제 앞으로 왔는데
, 도대체 학생의 신분이라면서

혹시 밀수꾼이냐 아니냐 라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그날 밤차를 타고 파리에 상경
, 새벽에 오를리 공항에 가서 여차저차 사정을 말하고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세관원들은 거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짓더군요.


말이 2 큐빅톤이지 작은 봉고차에 가득차는 엄청난 물량이
, 당시 돈으로도 수백만원 넘는

특급 항공운임표를 붙인채 제 앞에 쌓인 모습, 라면 상자의 산더미는 제 생전 처음

보는 장관이었지요. 마치 오르기 어려운 높은 산을 정복했노라는 성취의 뿌듯함에 앞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보잘 것 없는 일개 학생의 편지 글만을 믿고
, 라면 백여상자를,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운임까지 지불하여 특급우편으로 보내주신 삼양라면 사장님의

마음 쓰심을 생각하니 눈물이 핑 돌고 말더군요... 과연 어떤 분이실까. 뵙고 싶었습니다.
감사하고 황송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존경한다고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
저희의 대한민국 라면파티는 대성황으로 끝났고요
.
외국학생들에게는 "짜짜로니" 였던가요, 짜장면 류가 대인기를 끌었지요
.
작은 대학도시였지만, 라면파티 한 번으로 "한류열풍"을 일으켰던 적이 있었습니다
.


그리고 20년도 더 지나고
...
국민기업 삼양라면이 처했던 어려움도 그저 남의 일인냥 지나쳐버리고
, 이런 저런 핑계로

삼양라면 사장님께 그 흔한 그림엽서 한 장 올리지 못하였습니다. 부디 용서해주십시요.
오늘 우리나라의 위기를 맞았지만
, 삼양라면 사장님의 신념과 배려의 마음을 떠올리며

저희의 희망으로 삼습니다.
삼양라면! 사랑합니다. 영원히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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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멋진 회사입니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아이들 학교 방학하는날.. 자동차 밧데리를 바꾸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몸이 많이 괜찮아졌다. 목은 아직 잠겨있고, 기침과 가래는 나오지만, 그냥 좋아진듯하다. 호주에 와서, 이렇게 오랫동안 아팟던 적이 있었나?

3주만에 퍼팅연습을 잠깐 해봤더니, 감이 괜찮다. 다 잊어버린줄 알았는데^^

아이들 학교 데려다 주려고 시동을 걸었는데, 이런... 또 시동이 안걸린다. 보조밧데리를 연결해서 시동을 걸어서 간신히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다. 오늘이 아이들 학교 마지막 날인데, 시동 안걸려서 학교에 못갔다면 얼마나 황당했을까나..



집에오자마자 카센터에 전화해서, 예약하고, 밧데리 교환을 하러 갔다. 밧데리 바꾸는 동안에 냉각수도 좀 채워달라고 했더니, 냉각수도 채워주고, 말도 안했는데 엔진오일도 확인하더니 엔진오일도 조금 채워준다. 어려보였는데, 쌀쌀한 날씨에 맨손으로 손놀림 상당히 빠르다.
가격은 125불..
마트에서 밧데리가 95불에 파니까, 공임하고, 냉각수 채우고, 엔진오일 조금 채우고... 뭐, 괜찮은 가격인듯하다.

RTA에 가서, 새로 이사가는 주소로 주소변경을 했다. 새로운 주소는 운전면허증 뒤편에 프린트된 종이를 붙혀준다.
내 면허증이 오래돼서 그랬는지.. 약간 휘어져서, 가운데가 조금 갈라졌있어서, RTA직원에게 보여주었더니, 바로 바꾸어준단다~
마침 머리를 감고 온 덕분에 말끔한 사진으로 새로운 면허증 교체~
시간은 대략 5분정도 걸리고, 비용은 무료!
(현재 NSW주는 모든 운전면허증이 전산화 되어져 있어서 불법제조가 99.9% 불가능 하며, 타주의 경우는 100% 전산화가 되지 않아서 가끔씩 불법 제조가 만들어 진다고도 한다)

지갑에 100불짜리 골프우승 바우쳐가 있다.
이걸루 무얼하나...
클럽을 사자니... 100불 짜리로 살수 있는건 하나도 없고... 사용처 리스트를 보니, 약국이 하나 있다. 약국은 영어로, Chemist..
감기도 걸리고 해서, 옳다구나 하고 달려가서, 감기약 사고, 어린이들 해열제도 미리 사두고... 자금 부족으로 당분간은 못먹을거라고 단념하고 있었던 관절에 좋은 글루코사민도 사고, 로지 피부영양제도 사고~ 어린이들 비타민도 사고~ 다해서 99.3센트 나왔다~
돈대신에 바우쳐 건네주고 약국을 나왔다~ 아싸~~~

플라스틱백 하나가득 든 약들을 보면서 흐뭇해진다~



2009년 6월 4일 목요일

드디어! +9타 (80타)로 싱글 플레이 성공! & 핸디캡 조정 15 -> 14개

드라이버가 아주 딱~ 딱~ 맞아주더군요..
치는 족족 페어웨이이 떨어져 주고..

중간에 비가 억수로 떨어져서 20분정도 쉬었다가... 날씨의 악조건임에도 불구하고~

+9타로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최저타 80타를 기록했구요~

첫! 싱글플레이!!!

이제 7자 그릴날을 위하여 달려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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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2달이 넘는 시간동안 핸디캡이 오르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요인으로 인하여, 자세가 많이 흔들렸었습니다.
15개의 핸디캡에서 16개로 올라갔다가, 담방에 14개로 재조정되었습니다.

악천우로 인하여, 다들 성적이 별루 더군요... 2등과 3타 차이로 1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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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1등을해서 50불짜리 바우쳐를 받고.. 이차저차 미루다가, 3달이 지나서야, 수입의 절반을 아프리카 난민돕기에 보냈습니다.